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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러면, 이제 우리 기억속에만 남는 거야? (1화)

내 이름은 강현두 30살이다,

 

26살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곧바로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해 2년만에 합격.

 

28살에 잘나가는 회계법인에 취직한 나는 초봉임에도 세후 5,000이라는

 

2년이 아깝지 않은 급여를 받았다. 

 

공인회계사라는 어려운 시험을 공부머리가 없던 내가 2년만에 합격할 수 있던건

 

문과였던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회계사 밖에 없단 생각에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회계 공부를 좀 게으를 지언정 꾸준히 해왔다.

 

때문에 그 배경 지식으로 난 CPA(공인회계사시험)을 2년만에 합격할 수 있었다.

 

회계업무는 생각보다 정신력 소모가 컸다.

 

결국 나의 고객이 있는 거다 보니 때때로 일을 하다가 고객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대표에게도 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딜가든, 어느일을 하든 이런 일이 있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스스로 위안을 찾으며 난 2년동안 잘 버티면서 회계사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위안 중 가장 큰 위안은 돈이었겠지...?

 

난 여느때 처럼 출근을 하였다. 

 

벌이가 짭짤하니 서울이라 원룸도 비쌌지만 큰 부담 없이 회사 근처에 살다보니 걸어서 출근하였다.

 

출근 도중, 신호등 신호를 기다리는 나에게 어떤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할머니: 어디가시나?

 

대뜸 나한테 어딜가냐고 물으셔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답을했다.

 

현두: 출근하는 길입니다.

 

할머니: 무슨 일하는데?

 

현두: 아 저는 회계사입니다.

 

할머니: 아~ 회계사? 나이는 몇이야?

 

현두: 30살입니다.

 

할머니: 이야 30살이면 애도 있겠네?

 

현두: 네? 아뇨 애는 커녕 결혼도 아니 여자친구도 없는데요....

 

그런 의도는 아니셨겠지만 갑자기 슬퍼졌다...ㅠ

 

할머니: 아니! 그 나이가 될 때 동안 결혼도 안 했단 말이야!

 

명절도 아닌데 갑자기 명절에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런 잔소리에는 당연한 레파토리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기가 뭐였다", "이러면서 자녔다" 등등...

 

애석하게도 예상한 저 레파토리를 정확히 4분동안 쉬지도 않고 얘기하시는 거다.

 

신호가 바뀌어 나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한다음 도망치듯 신호를 건넜다.

 

현두: 참.... 그놈의 나 때는이 뭐라고....

 

회사에 도착한 나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메시지가 와 있어서 확인하려는 순간.

 

입사동기 세찬이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세찬: 왔냐? 

 

현두: 엉

 

세찬이는 나와 맞는 게 많았지만

 

무엇보다 나와 주량이 비슷했다. 3병을 마시는 내 주량에 맞게 잘 달려주는 술을 좋아하는 동기였다.

 

세찬: 캬아아 드디어 금요일이네, 주말에 뭐할 거냐?

 

현두: 나야 뭐... 놀고... 술 마시고... 그러겠지? 왜? 술 마시자고?

 

세찬: 아으 맨날 술이네. 이번엔 안 마신다.

 

현두: 엥 뭐야 그럼 뭐하게?

 

세찬: 본가나 갔다 오지뭐

 

현두: 본가?

 

그러고 보니 CPA 합격 후 본가에 내려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찬: 응, CPA 합격하고 한 번도 안 가본 거 같아서.

 

현두: 나도 그런 것 같네....

 

세찬: 너도 주말에 술 말고 본가 좀 갔다 와라, 부모님 얼굴은 그래도 한 번은 뵈야할 거 아니야.

 

현두: 음.....

 

너무 납득이 되는 세찬이의 말에 나도 본가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두: 그러지 뭐

 

세찬: 그래그래 일 봐라

 

그렇게 세찬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읽으려다 읽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해봤다.

 

대표: 현두씨 어제 XX기업 감사자료 구해서 9시 30분까지 저한테 갔다 주세요.

 

대.표.님?!?! "대표님인줄 알았으면 진작에 열어봤지! 근데 지금 몇시지?"

 

핸드폰을 켜보니.......

 

AM 9:35

 

"하... 아침부터 깨지겠네"

 

급하게 어제 구했던 감사자료를 가지고 대표님 사무실로 뛰어갔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표님이 창밖을 바라보시며 서 있으셨다.

 

현두: 저 대표...님?

 

대표: 아 현두씨 왔어?

 

현두: 아 죄송합니다 대표님... 시간 확인을 못해서 늦었습니다.

 

대표: 현두씨, 현두씨는 일은 잘 하는데 가끔 시간적인게 아쉬운 게 많아.... 

 

현두: 죄송합니다.

 

대표: 아녜요.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졌으니까 앞으로도 나아지겠죠?

 

현두: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대표님 창밖으로 어떤 걸 보고 계셨나요...?

 

대표: 네? 왜그러시죠?

 

현두: 그냥... 되게 눈빛이 슬퍼보시셔서요.

 

대표: 아.... 현두씨는 제가 언제 이 법인을 세웠는지 아세요?

 

현두: 어... 잘 모릅니다.

 

대표: 70년대에 이 법인을 세웠어요.

 

현두: 되게 오래됐네요?

 

대표: 그렇죠, 그래서 가끔은 그 때의 서울이랑 지금 서울이랑 계속 비교하게 되네요.

 

뭔가 아까 할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을 또 들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예상은 적중하였다.

 

대표: 이곳이 대부분 논밭이었어요. 자전거도 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이곳이 이렇게 큰 건물이 들어서고 자전거 보다 차가 더 많네요.

 

그렇게 5분 동안 대표님의 인생 전기를 들었다.

 

진정성 있는 말씀이란 걸 알지만 나는 집중하기 너무 힘들었다.

 

대표: 결국... 그때의 서울은 이제 내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거죠

 

?!

 

뭔가 마지막 말씀에 귀가 번뜩였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5분 동안 하신 표현 중 제일 진정성이 묻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대표: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가서 일 봐요.

 

현두: 넵 들어가보겠습니다.

 

지루했던 5분이지만 그래도 내가 특히 믿음이 가는 사원이라 저런 얘기도 해주시는 거겠지?

 

자리에 앉아서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세찬이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세찬: 뭐야 깨졌냐? 왜케 오래 있다 왔냐

 

현두: 아니 그냥... 대표님 인생 얘기 듣고 왔다. 서울이 예전에는 어땠다 저랬다.... 이런 거

 

세찬: 아 너도?ㅋㅋㅋㅋㅋ 그거 회사사람들 대부분한테 한 번씩 하잖아

 

아 그러네 생각해보니까 너도 나도 대표님께 옛날 얘기 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특히 믿음이 가는 사원이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업무는 손에 안 잡히고, 시간은 느리게만 가고, 업무보다 시계에 눈이 더 많이 갔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이제야... 점심시간.... 헤헤... 6시간 남았다....

 

회사 동기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 책상에 앉은 나는..... 미치도록 지겨운 6시간을 보냈다.

 

"안 되겠다! 업무를 열심히 하면 시간도 빨리 가겠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업무를 열심히 했다.

 

막상 업무를 하려니 해야할 업무가 많이 있었다.

.

.

.

한창 업무를 하던 와중에 한대리님이 나를 부르셨다. 

 

한대리님은 얼굴도 예쁘시고 매번 밝고 목소리도 좋으신 분이었지만

 

담배를 피신다는 반전이 있으신 분이었다.

 

한대리: 현두씨! 바빠요? 괜찮으시면 담배 피러 가실래요?

 

현두: 네 그러시죠!

 

마침 퇴근도 1시간 정도 남았고 시간 때우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우린 서로 맞담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한대리: 아니 현두씨, 아까 점심 먹고 담배 피는데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현두: 뭐라고 하셨는데요?

 

한대리: "거참 요즘 여자들은 담배를 저렇게 대놓고 피나, 나 어렸을 땐...." 막 이러시는 거 있죠?

 

한두: 허얼 그거 아세요? 저 오늘 따라 라때 얘기 많이 듣는 거?

 

한대리: 아 진짜요? ㅋㅋㅋㅋㅋㅋ

 

우린 그렇게 몇차례 더 얘기를 주고 받은 뒤 서로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6시가 되었고 정시 퇴근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옷을 벗고 핸드폰을 보다가 씻으러 들어갔다.

 

씻으면서 불금을 보낼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매번 같은 패턴으로 불금을 보내고 있던 터라 좀 더 새로운 거리를 생각하며 샤워를 마쳤다.

 

머리를 말리고 몸에 물기를 닦아내고 잠옷을 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그때, 찬인이한테 카톡이 왔다. 

 

"야야 너 그래서 내일 본가 갈 거지?"

 

"아 맞다 본가 가기로 했지!!"

 

나는 급하게 코레일톡을 켜서 본가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