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그러면, 이제 우리 기억속에만 남는 거야? (3화)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은 한 없이 조용하면서도 굉장히 빨랐다.

 

생각해보니 고향을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가서 어떻게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KTX 타고 1시간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당장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ㅋㅋㅋ 생각해보니까 얘한테 전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뚜루루루...(통화연결음)"

 

현두의 친구: 어 뭐야 자기야 무슨일이야

 

현두: ㅋㅋㅋㅋ 자기야라는 소리도 오랫만에 듣네

 

(내가 20대 때 친한 남자 애들한테 자주 쓰던 애칭이다. 물론 난 지극히 이성애자다.)

 

현두: 명준이! 나 오랜만에 내려간다. 지금 KTX야

 

명준: 뭐야 이렇게 갑자기?

 

현두: 원래 갈라 그랬는데 말하는 걸 까먹었지롱, 오랜만에 가는 거라 고향친구는 당연히 봐야지 오늘 시간 돼?

 

명준: 오늘 언제?

 

현두: 음.... 점심은 우리집에서 먹고 한 4시쯤 만나서 차타고 드라이브 어때? 그렇게 추억팔이 하면 2시간은 후딱 가겠지?

 

명준: 그치 너 오랜만에 오는 거니까 할 얘기도 많겠다야.

 

현두: 그치그치 그렇게 6시쯤에 술집가서 술이나 마시자!

 

명준: 야 근데 너 차는?

 

현두: 대리 부르면 되지

 

명준: 요오올 역시 회계사! 돈 좀 많이 모았나보다?

 

현두: 짭짤혀 ㅋㅋㅋㅋ

 

명준: ㅋㅋㅋ 그래 이따봅세

 

현두: 앙

 

그렇게 약속을 잡고 유튜브를 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50분 뒤 난 고향에 도착했다.

 

뭔가... 공기가 달랐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묵혀있던 향수가 팍하고 터져 나의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오 뭐가 많이 들어섰는데?"

 

원래 나의 고향은 그렇게 시골은 아니다. 하지만 기차역이 있는 곳은 10년전만 해도 누가봐도 시골이었다.

 

지리적으로 기차역과 사람들이 몰려 사는 곳이 10km 넘게 떨어져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이곳은 엄청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골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딱봐도 새로 지은 거 같은 아파트, 유흥가, 학교 등 건물들이 꽤 차 있었다.

 

감탄도 잠시 난 이 기차역과 약간 떨어져 있는 나의 고향, 내가 정말 자랐던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그곳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나는 택시를 잡아 곧장 출발했다.

 

난 회계사라는 직업을 가져, 꽤 안정되고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택시타면 미터기를 힐끔힐끔 보는 건 아마 죽을 때까지 똑같을 것 같다.

 

한 10분 달렸을까?

 

슬슬 내가 대학생 때 놀러 다니던 거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뭔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알아는 보겠는 걸?"

 

하지만 낯설정도로 바뀐 곳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을 더 가, 우리집에 도착하였다.

 

"도착했습니다"

 

택시비 30,000원...

 

다시 역으로 갈 땐 버스를 타야겠다...

 

난 택시에 내려 내가 살던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와.... 뭐야...

 

과거엔 단순히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였다면 아파트 내에 공원도 생기고 주차장도 많이 넓어졌다.

 

얘기하고 보니 많이 안 바뀐 거 같지만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감탄을 뒤로한채 난 내가 살던 층으로 가서 문 앞에서 도어락을 눌렀다.

 

"띠띠띠띠 (스륵) 또리리"

 

"저 왔습니다!"

 

바뀐 밖과 다르게 우리 집은 약간 바뀌긴 했으나 많이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 왔구나 우리 아가

 

현두: 아가 왔슈

 

아버지: 작은 놈 왔냐, 오느라 수고 많았다. 밥 먹어야지?

 

현두: 운전은 기사분들이 하셔서 나보다 더 고생했쥬, 밥 먹어유

 

식탁에 차려져 있는 것들은 제육볶음, 비지장, 흰밥 등 여러 밑반찬들이었다.

 

난 아직도 내가 살면서 먹은 제육 중 우리 어머니 제육이 제일 입에 맞는다.

 

어머니: 입에는 잘 맞니?

 

현두: 훌륭혀

 

어머니: 아휴 다행이네 뭐 좀 더 챙겨줄까?

 

현두: 아녀아녀 됐슈, 아 맞다 이거 드려야지

 

"봉투 두 개를 쓱 꺼내는 현두"

 

아버지: 이게 뭐니?

 

현두: 상추 좀 가져왔지요.

 

사실 어제 술 사러 나갔을 때 돈 좀 뽑아왔었다.

 

그렇게 부모님께 각 100씩 드리고 방에 들어왔다.

 

방에서 소화도 시키고 핸드폰도 보고 방도 둘러보고 하다보니 어느세 약속 시간이 되었다.

 

현두: 엄니 압지 저 친구 만나고 올게요.

 

마당에 내려가니 명준이가 마중나와 있었다.

 

현두: 이야 김명준 오랜만이다.

 

명준: 자 회계사 오빠 차타. 드라이브 가자

 

현두: ㄱㄱ

 

우리 둘은 차를 타고 동네를 둘러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는 내가 떠나기 전에 비해 개발이 많이 되었다.

 

고층건물은 상상도 못했는데 고층건물이 올라오질 않나...

 

예전에 놀았던 놀이터는 바닥을 싹 바꾸더니 완전 삐까뻔쩍한 놀이터로 바꾸었고

 

예전에는 불법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항상 좁았던 도로가 이젠 넓어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동네가 많이 밝아져 있었다.

 

명준: 현두, 어때? 많이 바뀌었지?

 

현두: 그러네, 진짜 많이 바뀌었어. 우리 고등학교나 함 가자

 

명준: 좋지

 

나의 모교에 도착한 나는 생각보다 크게 바뀌지 않은 나의 모교에 깊은 향수를 느꼈다.

 

현두: 여긴 많이 안 바뀌었네

 

명준: 그러네 나도 오랫만에 왔는데 진짜 안 바뀌었네

 

현두: 그래 이제 좀 고향으로 온 느낌이네.

 

명준: 뭐야 그럼 아까까진 아니었어?

 

현두: 응... 느껴지긴 했는데 뭔가 많이 바뀌어서 낮설기도 하고 그랬지...

 

명준: 뭐... 그럴 수 있지.

 

나와 명준이는 다른 동네까지 가면서 옛추억을 나누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한 껏 추억을 나누다 약간 휴식 느낌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SNS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갤러리를 눌렀다.

 

혹시라도 내가 찍어놓은 사진들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갤러리를 봤지만

 

사진 찍히는 걸 싫어했던 나는 과거에 찍은 사진이 많이 없었다.

 

아쉬웠다. 나의 과거가... 나 조차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현두: 명준아, 술이나 먹으러 가자

 

명준: 그래 뭐 시간도 다 됐네.

 

과거, 나와 명준이가 제일 많이 가던 동네 술집에 차를 대고 술집에 들어 갔다.

 

"2명이요!"

 

현두: 소주?

 

명준: 아잇 당연하지

 

현두: 안주는?

 

명준: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현두: 오 그럼 염통꼬치?

 

명준: 아 그건 좀...

 

현두: 아? 그럼 크림새우

 

명준: 아 튀긴 건 좀.....

 

현두: 미친놈인가봐 진짜 너가 시켜

 

명준: 오키 짬뽕탕 가자

 

현두: 미친놈이 잘만 고르네

 

"여기 시원 두 병에 짬뽕탕이요!"

 

명준: 일요일에 다시 서울로 가려고?

 

현두: 그치 그전까진.... 다른 친구들도 만나서 놀아야지

 

명준: 회계사 일은 안 빡세고?

 

현두: 빡세지... 그래도 벌이가 나쁘지 않아. 넌 뭐하면서 지내냐

 

명준: 나는 밀키트 만들어서 온라인 스토어에 판다.

 

현두: 욜 이름이라도 좀 알려줘봐

 

명준: "명키트" 우리 회사 이름이다.

 

현두: 여기꺼 함 먹어봐야겠다.

 

명준: 이야... 그래도 우리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많이 바뀌었다 그치?

 

현두: 그러게... 동네만 바뀐게 아니라 우리도 많이 바뀌었네...

 

명준: 야 근데 넌 아까부터 왜이리 아쉬워 하는 말투냐?

 

현두: 아... 그게 아까전에 갤러리를 봤는데 우리동네 옛날 사진 같은 게 없더라고...

 

명준: 에이 뭐 그렇게 과거에 연연해 하냐

 

현두: 그치 그럴 필요 없긴 해. 맞아

 

종업원: 소주 먼저 드릴게요.

 

현두: 안주 나오기 전에 한 잔?

 

현두와 명준은 그렇게 안주 나오기 전에 한 잔.... 안주 나오고 한 잔.... 한 입 떠먹고 한 잔....

 

"사장님 여기 시원 한 병 더요!"

 

이 둘은 따뜻한 짬뽕탕처럼 점점 볼도 따뜻하게 무르익어갔다.

 

현두: 명준아, 혹시 우리 동네 더 개발 되는 곳 있냐?

 

명준: 어어 있지, 그 너희 집하고 우리집 사이에 pc방 하고 분식집 있던 곳 있지? 거기 다 밀고 건물 다시 세운대

 

현두: 아 진짜? 캬 우리 동네도 진짜 도시처럼 되어가고 있네.

 

명준: 이제 우리 깡촌 아니다. ㅋㅋㅋㅋㅋ

 

현두: 그치 ㅋㅋㅋ 하 근데 거기 분식집에서 진짜 잘 놀았었는데

 

명준: 아 맞아 맞아! 맨날 학교 끝나면 분식집 가서 배채우고 pc방가서 게임하다 아이스티 시켜 마시고. 아주 낭만적인 루틴이었지

 

현두: 아 그거 기억나냐? 우리 고등학교 때 언제 한 번은 분식집 안 가고 pc방 바로가서 게임했었잖아.

 

명준: 어어

 

현두: 게임 다하고 나왔는데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다가 뒤에 소주 있는 거 보고 한 번 뚫어보려고 했는데 진짜 뚫렸던 거 ㅋㅋㅋㅋㅋ

 

명준: 아 맞아 그와중에 그때 양심에 찔려서 죄송하다 하고 그냥 나왔잖아 ㅋㅋㅋㅋ

 

현두: 하 ㅋㅋㅋ 진짜 좀 그립네.... 그때 재밌었는데 ㅋㅋ....

 

명준: 지금은 뭐... 우리도 아저씨 소리 들을 때 아니냐?

 

현두: 야 30대 초반이 무슨 아저씨야.

 

명준: 그런가

 

현두: 근데 우리 동네 진짜 멋있어진 거 같다... 근데 뭔가 좀 뭐랄까... 서운하달까? 좀 그러네

 

명준: 왜?

 

현두: 우리가 즐겼던 과거가 사라지고 있잖아... 우린 그때 찍은 동네 사진도 없는데...

 

"순간 갑자기 그말이 떠올랐다"

 

현두: 이렇게 재개발하면 그 이전 모습들은 "이제 우리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거야?"

 

명준: 야. 뭐 갑자기 그런 말을 하냐? 원래 바뀌고 사라지고 그러는 거지. 석기시대 사람들도 지금 모습보면 슬퍼하겠다.

 

현두: 그건 좀...

 

명준: 암튼 오글거리게 그런말 그만하고 소주나 더 시켜, 2병으로. 이것만 더 마시다 가자.

 

현두와 명준은 그렇게 더 술을 즐기고 둘 다 꽤 취한 상태가 되었다.

 

명준: 현두야

 

현두: 앙?

 

명준: 나도 아쉬워

 

현두: 뭐가?

 

명준: 나도 여기 개발되는 거 아쉽다고 옛날 모습에 나도 미련이 많아. 근데 미련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뭐 되는 것도 아닌데.

 

현두: 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왜 "나때는 나때는" 하는지 이제 좀 알겠어.... 그때 그시절이 그리운데, 다시 그시절 자기처럼 될 수 없다는 게 아쉬워서 그런 거 같아.

 

명준: 우리도 나이 먹으면 그러겠지 그리고 그거에 고통 받는 젊은 친구들이 또 있을 거고

 

현두: 그치.... 그러니까 우리 더 늙기 전에 추억을 많이 남겨라도 두자. 셀카 찍을래?

 

명준: 에이 남자둘이서 뭔...

 

현두: 닥쳐 여기봐

 

"찰칵"

 

현두: 이렇게 해야 나중에 같은 후회 안 하지 안 그래? 슬슬 집에 가자 부모님이랑도 찍어야 돼.

 

명준: 가자!

 

 

 

 

여러분들도 추억이 있으시죠? 과거는 고칠 수 없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 가치 있는 겁니다.

나의 과거나 현재 모습을 미래에 가서 기록이 없기에 추억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아쉬울 겁니다.

미래에 나를 추억하기 위해 앞으로 우릴 남겨봅시다.

 

<끝>